글로벌 표준특허 분쟁동향 및 대응전략 - 박진석 파트너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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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전

1. 서론
최근 글로벌 산업 환경에서 기술 표준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표준필수특허(Standard Essential Patent, SEP)의 역할 또한 확대되고 있다. SEP는 국제 표준을 구현하기 위해 반드시 사용되어야 하는 특허로서, 특정 기술이 글로벌 표준으로 채택되면, 이를 구현한 모든 제품은 해당 특허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SEP를 보유한 기업은 표준 기술을 따르는 경쟁 기업에게 라이선스를 부여하고 로열티를 받을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가지게 되며, 이는 시장 지배력과 직결된다. 그러나 동시에 SEP의 권리 행사는 다양한 법적 분쟁을 수반하게 되며, 특히 FRAND(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조건 하에서의 라이선스 제공 의무, 침해금지청구권의 인정 여부, 필수성 판단 문제 등 복잡한 이슈가 존재한다. 이하에서는 SEP의 개념, 법적 특성, 분쟁 사례, 쟁점, 그리고 대응 전략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2. 표준필수특허의 개요
표준필수특허란 국제표준화기구(SSO: Standards Setting Organization)가 제정한 기술 표준을 구현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기술에 부여된 특허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ITU, ISO, ETSI와 같은 표준화기구는 통신규격, 비디오 코덱, 데이터 전송 방식 등에 대해 일정한 기술적 기준을 마련하며, 이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반드시 사용되어야 하는 특허가 SEP에 해당한다. SEP는 통신 산업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활용되며, 4G LTE, 5G NR, CDMA, Wi-Fi 등 다양한 통신 표준이 이에 포함된다. 또한, 오디오/비디오 코덱(MPEG, AAC, H.264, H.265)과 같은 콘텐츠 처리 기술, 디지털 TV 방송 표준, 차량 내 통신 시스템 등에도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SEP는 일반 특허와 동일하게 신규성, 진보성, 명세서 기재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러나 SEP는 단순한 독점권 확보를 넘어 시장에서의 기술 표준 수립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특허권자의 입장에서 매우 전략적인 자산이다. SEP의 청구항은 해당 표준의 규격을 충실히 반영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하며, 표준규격을 충족하는 모든 제품에 대해 권리 행사가 가능하므로, 이를 정확히 매칭하는 클레임 차트의 구성이 중요하다.
3. 표준특허 분쟁사례
SEP는 기술 표준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분쟁은 매우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Huawei v. ZTE 사건이 있으며, 유럽사법재판소(CJEU)는 이 사건에서 특허권자의 침해금지청구권 행사는 FRAND 협상의 진정성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고 판단하였다. 이 판결은 SEP의 권리 행사에 있어 특허권자와 실시자 간의 협상 태도와 의사소통이 중요함을 강조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TCL v. Ericsson 사건에서는 수천 건의 SEP 중 실제로 필수성을 갖춘 비율이 약 39%에 불과하다는 점이 강조되었으며, 이러한 분석은, 표준 실시자의 입장에서는 문제가 되는 SEP가 반드시 표준 구현에 필수적인지 여부를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유럽, 중국 등에서는 각각 다른 기준과 해석을 적용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소송의 결과 또한 상이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동차, 스마트홈, 사물인터넷(IoT), 헬스케어 등 ICT 융합 산업의 발전에 따라 SEP의 적용 범위는 더욱 넓어지고 있으며, 실제로 Tesla, Volkswagen, Samsung, Apple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다양한 SEP 분쟁에 연루되고 있다. 특히 5G 관련 특허 패밀리는 2017년부터 2023년 사이에 10배 이상 증가했으며, 이는 표준기술이 산업 전반에 걸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4. 표준특허 분쟁의 주요 쟁점
SEP 관련 분쟁의 핵심은 FRAND 조건 이행 여부에 있다. 대부분의 SSO들은 특허권자가 SEP를 표준에 포함시키는 조건으로서 FRAND 선언을 요구한다. 이는 해당 기술을 사용하고자 하는 모든 기업에게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으로 사용을 허락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FRAND가 얼마나 잘 이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특히 로열티 산정의 합리성 여부는 SEP 소송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 사안이 되고 있다. FRAND 조건 하에서의 “Reasonable”이란 개념은 각국 법원에서 그 해석이 상이하며,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정립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특허권자가 침해금지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쟁점이다. 일부에서는 FRAND 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침해금지청구권을 포기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다른 판례에서는 이를 명시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이상 권리 행사가 가능하다고 보기도 한다. 따라서 양 당사자의 협상 태도, 경고장 제공 여부, 클레임 차트의 명확성, 상대방의 진정성 있는 협상 참여 여부 등이 모두 법적 판단의 요소가 된다.
5. 표준특허 분쟁 대응전략
SEP 분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실시자의 입장에서는 우선 제품이 해당 표준을 실제로 구현하고 있는지를 분석해야 하며, 특허권자가 제시하는 클레임 차트가 표준 규격과 제품 사양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또한 SEP가 실제로 필수적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필수성 평가(Essentiality Evaluation)”가 요구된다. 특허풀에 포함된 SEP에 대해서도 이러한 평가를 엄격하게 적용함으로써, 과도한 로열티 청구를 방지할 수 있다.
특허권자 입장에서는 표준화 과정에서 특허를 적절히 공개하고, FRAND 조건 하에 협상에 응할 의무가 있다. 미국에서는 공개 의무 위반 시 "묵시적 포기(implied waiver)"가 인정될 수 있으며, 이는 특허의 권리 행사를 제한하는 강력한 방어 수단이 될 수 있다.
또한 미국특허심판원(PTAB)의 IPR(당사자 무효심판) 절차나 유럽의 UPC(통합특허법원) 무효소송 등 제도적인 수단을 통해 SEP의 유효성 자체를 다투는 전략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6. 결론
표준필수특허는 단순한 기술 보호를 넘어선 전략적 자산이며, 이를 둘러싼 법적 분쟁은 향후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SEP는 글로벌 기업 간 경쟁에서 중요한 도구로 작용하지만, 동시에 강력한 규제와 의무를 수반하는 양날의 검과 같다. 기업은 SEP의 구조적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표준 규격에 대한 기술적 분석, 로열티 기준, 협상 전략, 제도적 대응 수단 등을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SEP에 대한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관리와 대응은 기업의 경쟁력 유지와 글로벌 시장 진입에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