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으로 소송하면 모두 '집단소송'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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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14.10.24
- 집단소송, 공동소송, 단체소송의 비교 -
1. 들어가며
요즘 뉴스에서 자주 듣는 법률용어 중에 하나가 바로 ‘집단소송’이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A 증권사가 고객들에게 경영 상태가 부실한 계열사의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판매한 직후 해당 계열사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자 고객들이 변제받을 길이 없어 손해를 보게 된 경우, B 통신회사가 보유·관리하고 있던 고객들의 개인정보가 해커들에게 유출되어 고객들에게 피해가 발생한 경우, C 휴대전화기 제조회사가 고객들에게 동의도 받지 않고 고객들의 위치정보를 수집함으로써 고객들에게 피해가 발생한 경우, D 광역시가 아파트 주변에 도로를 건설하면서 소음방지대책을 수립하지 않아 해당 아파트 주민들이 자동차 소음으로 피해를 보게 된 경우 등, 주로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경우 신문이나 방송을 통하여 '피해자들이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라거나 ’피해자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하였다‘라는 뉴스를 접하게 됩니다. 아마도 다수의 피해자가 집단(group)으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의미에서 ’집단적(集團的)‘ 소송을 단순히 ’집단소송‘이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다수의 피해자가 집단으로 소송을 제기한다고 하여 모두 ’집단소송‘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국내에서는 증권관련 손해배상 사건 중 특별한 몇몇 경우만 법적으로 ’집단소송‘에 해당될 뿐, 다수의 피해자가 집단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그저 ’공동소송‘에 불과합니다. 가끔 뉴스에서 ’단체소송‘이라는 용어도 나오는데, 일반인들에게는 다수의 피해자가 ’단체(group)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의미처럼 생각되어 ’집단소송‘과 같은 말은 아닌지 혼동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특별한 인식 없이 ’집단소송‘, ’공동소송‘, ‘단체소송’을 혼용하고 있거나 혼동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혼용이나 혼동을 바로 잡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집단소송‘, ’공동소송‘, ‘단체소송’이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차이점은 무엇인지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공통점 및 차이점
집단소송, 공동소송, 단체소송은 다수의 피해자를 가능하면 한 번에 모두 구제하기 위하여 마련된 1회적 분쟁 해결 제도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각 소송제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누가 소송의 당사자가 되고 판결의 효력은 누구에게 미치느냐일 것입니다. 각 소송제도가 규정된 국가나 관할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집단소송’은 다수의 피해자들 중에서 1인 또는 수인이 전체 피해자를 대표하여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소송의 당사자가 되지만 판결의 효력은 명시적으로 해당 집단에서 빠지겠다는 의사 표시나 신고(opt-out)를 하지 않은 피해자 전체에게 미칩니다. 반면 ‘공동소송’은 법적 구제를 받으려는 피해자들이 전부 소송의 당사자가 되어야 하고 판결의 효력도 소송의 당사자가 된 피해자들에게만 미치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단체소송’은 피해자들이 직접 소송의 당사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제3의 단체(organization)가 피해자들을 대신하여 소송의 당사자가 되고 판결의 효력은 다른 단체들과 피해자들에게 미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공동소송’이 기본적인 제도이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법률로 정하여 ‘단체소송’과 ‘집단소송’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3. 집단소송
‘집단소송’은 일반적으로 영미법계 국가에서 활용되는 소송제도로서 흔히 ‘class action’이라고 불립니다. 미국 연방법원의 경우 연방민사소송규칙(Federal Rules of Civil Procedure) 제23조에서 ‘집단소송’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 피해자들의 집단 구성원 중 1인 또는 수인이 대표당사자(representative parties)가 되어 소송을 제기하고, 법원은 집단소송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결정합니다. 집단소송이 되기 위해서는 4가지 요건을 충족하여야 하는데, (1) 집단 구성원이 너무 많아서 공동소송이 어려울 것, (2) 법률상 또는 사실상 문제가 집단에 공통될 것, (3) 대표당사자의 청구가 집단의 청구와 같은 유형일 것, (4) 대표당사자가 집단의 이익을 공정하고 적절히 보호할 것을 그 요건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2003년부터는 미국 연방민사소송규칙 제23조 (g)항이 신설되어, 법원이 변호사들의 신청을 받아 가장 적절한 자를 집단의 소송대리인(class counsel)으로 선택하도록 하고 있으며, 법원이 집단의 소송대리인을 결정할 때 변호사 수임료까지도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집단소송이 공익적 성격에 반하여 주로 거액의 수임료나 개인적 명성을 염두에 둔 변호사들에 의해 기획되는 경우가 많았고, 승소하더라도 변호사 수임료를 지급하고 나면 피해자들에게 돌아가는 손해배상액은 터무니 없이 적게 되는 폐단이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에서는 소송의 당사자가 되지 않는 다수의 피해자들을 대표하여 대표당사자가 소송을 제기하고 그 판결의 효력이 모든 피해자들에게 미치도록 하는 ‘집단소송’은 특별히 법률로 정하지 않는 한 일반적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단지, 다수의 소송 당사자들 중 1인 또는 수인을 선정당사자로 선정하여 소송을 수행하도록 하고 나머지 당사자들은 소송에서 탈퇴하지만, 그 판결의 효력은 모든 당사자에게 미치도록 하는 ‘선정당사자’ 제도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선정당사자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결국 소송의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대표당사자를 제외한 다른 대다수의 피해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송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집단소송’ 제도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특별히 법률로 정하여 ‘집단소송’을 허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이 그것입니다.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에서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의 몇몇 특별 규정들에 의한 손해배상청구에 한정하여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청구원인이 너무 한정되어 있어 집단소송이 제기되는 경우가 적고, 소송이 제기된다 하더라도 소송허가 심리에 너무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2005년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이 제정된 이후 2013년 현재까지 모두 5건의 집단소송이 제기되었고, 그 중 3건(1건은 2010년, 2건은 2013년)에서 소송허가가 결정되었는데 소송허가 심리에만 약 1~2년이 소요 되었습니다. 또한 ‘집단소송’을 모든 분야로 확대 적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집단소송법안이 현재 국회에 상정되어 있기도 합니다.
4. 단체소송
‘단체소송’은 주로 대륙법계 국가에서 활용되는 제도로서, 다수 피해자들의 사후적 구제수단인 손해배상청구 등에 적용되는 ‘집단소송’과 달리, 공익적 차원에서 사회단체가 신속히 다수 피해자들의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 침해금지·중지 등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사회단체가 피해자들을 대신하여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경우 단체들의 이권 개입이나 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손해배상청구 자체가 공익적 사회단체의 설립 및 운영 취지와 다소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단체소송’에서는 손해배상청구를 허용하고 있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국내에서는 제3의 단체가 피해자를 대신하여 소송의 당사자가 되는 것을 일반적으로 허용하고 있지 않지만, ⌜개인정보보호법⌟과 ⌜소비자기본법⌟에서는 특별히 공익적 성격의 사회단체가 다수의 피해자들을 대신하여 침해금지·중지를 구할 수 있는 ‘단체소송’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6년 소비자보호법이 소비자기본법으로 전부 개정되면서 처음으로 ‘단체소송’을 도입하였고, 2009년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되면서 추가로 ‘단체소송’을 허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법에서 허용하는 단체소송은 청구원인, 단체의 종류, 제소요건 등이 다소 다릅니다.
두 법을 간단히 비교하자면, 개인정보보호법에서 단체소송을 허용하는 단체는 제51조의 요건을 충족시키는 소비자단체와 비영리민간단체에 한정되지만, 소비자기본법에서는 추가적으로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의 경제단체를 포함하고 있어 허용 단체의 범위가 개인정보보호법보다 더 넓습니다. 또한 개인정보보호법에서는 개인정보주체의 피해 또는 권리침해에 대한 책임으로 청구원인이 한정되지만, 소비자기본법에서는 국가가 정한 표시기준, 광고기준, 개인정보 보호기준 등에 위반하여 발생한 소비자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대한 권익침해에 대한 책임을 청구원인으로 하기 때문에 오히려 소비자기본법이 개인정보보호법의 청구원인을 상당 부분 포함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개인정보보호법은 집단분쟁조정을 거쳐야만 단체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서 소비자기본법보다 제소요건도 더 까다롭습니다. 따라서 두 법의 규정만 단순 비교해 본다면, 개인정보 침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단체소송을 제기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소비자기본법에 따라 단체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더 수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현재까지 소비자기본법에 따른 단체소송은 2012년 경실련 등 4개 소비자단체가 공동으로 제기한 1건밖에 없고,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른 단체소송은 아직 제기된 적이 없습니다.
5. 공동소송
‘공동소송’은 국내 민사소송법에서 일반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소송제도로서, 소송목적이 되는 권리나 의무가 여러 사람에게 공통되거나 사실상 또는 법률상 같은 원인으로 말미암은 경우에 허용됩니다. 또한 소송목적이 되는 권리나 의무가 ‘같은 종류’의 것이고 사실상 또는 법률상 ‘같은 종류’의 원인으로 말미암은 경우에도 ‘공동소송’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집단소송’이나 ‘단체소송’과 달리 ‘공동소송’은 법적 구제를 받으려는 사람이 모두 소송의 당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소송대리인을 선임하는 경우에도 모든 사람이 위임장을 작성해야 하고, 선정당사자를 선정하는 경우에도 소송의 당사자로서 선정당사자를 선정해야 하므로, 결국 어떠한 형태로든 소송에 참가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A 증권회사, B 통신사, C 휴대전화기 제조사, D 광역시 사건도 뉴스에서는 ‘집단소송’이라는 표현을 일부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엄밀히 말하자면 정신적, 경제적 피해에 대한 법적 구제(주로 손해배상)를 받고자 하는 다수의 피해자들이 직접 소송의 당사자가 되어 소송대리인을 선임한 ‘공동소송’에 해당합니다. 물론 앞서 설명한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에 따른 ‘집단소송’이나 개인정보보호법 또는 소비자기본법에 따른 ‘단체소송’의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는 ‘집단소송’이나 ‘단체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6. 나가며
최근 들어 뉴스에서 ‘집단소송’이란 용어를 많이 접하게 되면서 이제는 ‘집단소송’이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많은 사람들이 ‘집단소송’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단순히 ‘집단으로 제기하는 소송’ 정도로만 인식하면서 ‘집단소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이 ‘집단소송’, ‘단체소송’, ‘공동소송’의 정확한 의미, 차이점, 관련 규정까지 알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법률용어가 일상용어나 시사상식과 같은 정도가 되었으므로 이 글을 통하여 그 의미와 차이를 한 번 짚고 넘어감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상식을 보다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