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7. 11. 14. 선고 2016두1066 판결【요양불승인처분취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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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18.03.19
재판경과
서울행정법원 2014. 11. 7. 선고 2011구단8751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6. 10. 6. 선고 2014누8492 판결
대법원 2017. 11. 14. 선고 2016두1066 판결
전 문
원고, 상고인 망 B의 소송수계인 C
피고, 피상고인 근로복지공단
원심판결 서울고등법원 2016. 10. 6. 선고 2014누8492 판결
판결선고 2017. 11. 14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제1호 가 정하는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질병으로 인정하려면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근로자측에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ㆍ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ㆍ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산업재해의 발생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근로자의 취업당시 건강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장에 발병원인이 될 만한 물질이 있었는지 아닌지, 발병원인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이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일 생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4. 4. 9. 선고 2003두12530 판결 , 대법원 2008. 5. 15. 선고 2008두3821판결 등 참조).
한편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이른바 ‘희귀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수 없다. 특히, 희귀질환의 평균 발병률이나 연령별 평균 발병률보다 특정 산업 종사자 군(群)이나 특정 사업장에서 그 질환의 발병률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률이 높거나,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 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인자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접ㆍ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법원 2017. 8. 29. 선고 2015두3867 판결 참조).
2.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망 B(F생, 이하 ‘망인’이라 한다)은 1997. 5. 12. 삼△전자 주식회사에 입사하여 E사업장(이하 ‘이 사건 사업장’이라 한다) ‘반도체 조립라인’의 검사공정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근무하다가 2003. 7. 15. 퇴사하였다.
망인은 이 사건 사업장에서 생산 완료된 반도체칩이 실린 운반기구를 직전 공정에서 끌어와, 반도체칩을 100여 개의 소켓으로 구성된 판에 꽂아 넣고, 다시 그 판을 정렬장치에 꽂은 다음, 그 정렬장치를 고온테스트기계에 넣고 일정 시간 동안 약 120℃로 가열한 상태로 전류를 흘려보내 반도체칩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검사하였다. 고온테스틑 중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기능 불량 반도체칩은 고온테이스기계 내에서 기계에 의해 자동으로 분류되었으며, 고온테스트가 끝나면 고온테스트기계를 열고 정렬장치를 꺼내어 외관이 불량한 반도체칩을 육안으로 선별하여 제거하고 정상적인 반도체칩을 다시 운반장치에 넣어 다음 공정으로 가져다주었다. 고온테스트 과정에서 일부 반도체칩은 합선이 발생하여 판에 있는 소켓에 눌러붙거나 타버리는 일이 일어나는데, 반도체칩 자체의 불량 외에도 반도체칩이 소켓에 잘못 꽂힌 경우에도 합선일 발생하였고, 고온테스트를 마친 후 기계를 열면 고무가 탄 듯한 냄새가 났다. 합선이 발생한 소켓에는 고열에 의해 산화된 이물질인 ‘검댕’이 끼어 있었으며, 근로자들이 종종 ‘에어건(air gun)’을 사용하여 이를 제거하였다.
망인은 주로 4조 3교대 또는 3조 3교대 근무를 하였고, 인력이 부족하거나 생산물량이 증가하는 경우 1일 12시간까지(06~18시 또는 18시~06시) 연장근무를 하였다.
나. 망인은 2003. 7. 15. 삼△전자 주식회사에서 퇴직한 후 2004년경 결혼하여 자녀 2명을 출산하고 자녀 양육과 집안일을 도맡아 하던 중 2010. 5. 4. 뇌종양(교모세포종) 진단을 받았고, 외종양 제거수술을 받은 후 항암치료를 받다가 2012. 5.
7. 사망하였다. 망인의 가족 중 유전 질환이나 암으로 투병한 환자는 없었다.
다. 뇌종양 발생에는 종양 억제유전자의 소실 또는 종양 유전자의 발현이라는 유전학적 요소가 관야한다. 많은 경우에 외부의 돌연변이 유발물질이 원인이 되어 종양 유전자와 종양 억제유전자의 표현과 구조를 변화시켜 종양을 발생시키는데 이를 ‘발암물질’이라 한다.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3대 원인물질은 방사선, 화학물질, 바이러스이고, 그 밖에 호르몬, 개인의 면역능력이 관여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교모세포종이란 뇌ㆍ척수조직이나 이를 싸고 있는 막으로부터 발생하는 원발성 종양으로서, 우리나라의 경우 2005년 교모세포종의 발생률은 인구 10만 명당 남성 0.68명, 여성 0.52명이고, 진단 시점의 연령 중앙값은 55.5세라는 연구결과가 있으며, 한국중앙암등록본부가 2009년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연령대별 분포는 60대가 26.4%, 50대각 21.7%, 40대가 18.3%로 나타났다.
교모세포종은 빠른 성장을 보이고 예후가 좋지 않아 대부분 1~2년 이내에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악성도가 더 낮은 신경교종의 악성 변화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 2007년에 발표된 연구결과에서는 처음에 악성도가 낮은 신경교종을 진단받았다가 악성변화를 통해 교모세포종이 발생한 사례 7건을 보고하였는데, 이들 사례에서 악성 변화까지 소요된 기간의 중앙값은 5.1년이었다. 2010년에 발표된 다른 연구결과에서는 교모세포종 수술환자 사례 110건 중 과거에 악성도가 낮은 신경교종을 진단받고 수술한 이후 악성 변화를 보인 경우로 10건을 보고하였는데, 이들 사례에서 악성 변화까지 소요된 기간의 중앙값은 2년 8.5개월이었다.
라.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발암물질을 5단계로 분류하여 지정하고 있는데, 벤젠, 포름알데히드는 1군 발암물질로, 납은 2A군 발암물질로, 비전리방사선은 신경교종에 대하여 2B군 발암물질로 분류되어 있으며, 신체의 밤낮 주기를 붕괴시키는 주ㆍ야간 교대근무는 2A군 발암물질로 분류되어 있다.
한편 교모세포종의 발현에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종양 억제유전자인 P53이 신체의 밤낮 주기에 의해 조절된다는 실험연구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마. 망인의 요양급여 신청에 따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10년 수행한 역학조사 결과 이 사건 사업장의 일부 측정위치에서 낮은 농도의 벤젠이 검출되었으며, 그 무렵 시행된 작업환경 조사에서는 이 사건 사업장의 기계설비에서 높지 않은 수준의 비전리방사선이 측정되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이 사건 역학조사 당시 포름알데히드(Formaldehyde), 엘틸렌옥사이드(ethyleneoxide), 납 등 일부 발암물질에 대해서는 노출수준을 측정하지 않았으며, 고온테스트를 마친 직후 기계에서 배출되는 고무가 탄 듯한 냄새의 원인물질과 검댕의 성분이나 노출수준에 관해서도 조사하지 않았다.
바. 피고는 위 역학조사 결과를 기초로 2011. 2. 7. 망인의 뇌종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요양불승인 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을 하였다.
사. 그 후 반도체사업장의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지속되자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2012년 반도체사업장의 작업환경과 유해요인을 연구하였고, 2014년경에는 이 사건 사업장에서 근무하다가 최사한 후 뇌종양을 진단받은 다른 근로자와 관련한 역학조사를 수행하였다. 그 결과 이 사건 사업장에서 노출기준 이하의 벤젠과 포름알데히드, 비전리방사선이 측정되었고, 고온테스트 후 설비 내부 바닥에 떨어져 있던 고형 먼지에서 납이 검출되었으며, 고온테스트 과정에서 합선이 발생하는 경우 납 성분이 포함된 연기가 발생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3. 이러한 사실관계와 이 사건 기록에 나타난 사정들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망인의 업무와 뇌종양 발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긍정할 여지가 크다.
가. 망인은 이 사건 사업장에서 약 6년 2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앞서 본 여러 가지 발암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다. 비록 이 사건 사업장에서 측정된 발암물질의 측정 수치가 노출기준 범위 안에 있다고 할지라고 근로자가 장기간 노출될 경우에는 건강상 장애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유해인자 노출기준은 해당 유해 인자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경우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노출되거나 평균근로시간 이상으로 장시간 근무하는 경우나, 작업강도가 높거나 주ㆍ야간 교대근무를 하는 등 작업환경의 유해요소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 등에는 유해요소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질병 발생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망인은 주로 4조 3교대 또는 3조 3교대 근무를 하면서 인력이 부족하거나 생산물량이 증가하는 경우 1일 12시간까지 연장 근무를 하여 신체의 밤낮 주기가 매우 불규칙하였으므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할 수 있다.
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이 사건 역학조사를 하였을 당시에는 망인이 근무한 때부터 이미 여러 해가 지난 시점이었고 그 사이에 반도체칩 검사작업을 하는 근로자의 작업환경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이 사건 역학 조사는 조사 당시의 상황을 기초로한 것이기 때문에 망인이 근무하였을 당시의 작업환경을 제대로 파악하는데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건 역학조사에서는 발암물지로 제대로 파악하는데 일정한 한계가 있엇다. 그리고 이 사건 역학조사 과정에서 망인과 동료 근로자로부터 고온테스트를 마친 후 검댕이 많이 날렸고 고무가 탄 듯한 냄새가 났으며 그 과정에서 유해한 연기와 화학물질에 노출되었다는 진술이 있었음에도, 그 원인물질과 노출수준에 관하여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망인의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할 때에는 위와 같이 역학조사 자체의 한계도 고려하여야 한다.
다. 망인은 입사 전에는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뇌종양과 관련된 유전적 소인, 병력이나 가족력이 전혀 없는데, 이 사건 사업장에서 상당 기간 근무하고 퇴직한 이후에 우리나라의 평균 발병연령보다 훨씬 이른 시점인 만 30세 무렵에 뇌종양이 발병하였다.
라. 이 사건 사업장돠 이와 근무환경이 유사한 반도체사업장에서 뇌종양 발병률이 한국인 전체 평균발병률이나 망인과 유사란 연령대의 평균발병률과 비교하여 유달리 높다면, 이러한 사정 역시 망인의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데에 유리한 사정으로 작용할 수 있다.
마. 교모세포종은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이고 예후가 좋지 않은것으로 알려졌지만, 악성도가 낮은 신경교종이 발생하였다가 그것이 수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악성도가 높은 교모세포종으로 변화하는 사례가 보고된 적이있다. 그뿐만 아니라, 성장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종양이 빠른 속도로 성장ㆍ악화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 발암물질에 노출된 후 뇌종양 발병에까지 이르는 속도 역시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망인이 퇴직 후 7년이 지난 다음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는 점만으로 업무와 뇌종양발명 사이에 관련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4. 그런데도 원심은 망인이 업무와 뇌종양이 발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원심의 판단에는 업무상 재해의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정당하다.
5.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 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재판장 대법관 이기택 주심 대법관 박보영 대법관 김창석 대법관 김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