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권자에 대한 금반언 원칙 적용 여부 - 강민석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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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 변리사
특허권자가 권리범위확인 사건에서 권리범위와 특허무효 사건에서 권리범위를 모순되게 주장하는 경우, 금반언 원칙 적용 여부 - 2023. 11. 30. 선고 2023허11593 판결
1. 서언
일반적으로 특허권자는 자신의 특허 청구범위를 넓게 해석하여, 침해자가 자신의 특허를 침해하거나 침해자의 실시제품이 특허의 권리범위에 속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특허무효 사건에서는 신규성 내지 진보성 부정으로 특허가 무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특허 청구범위를 좁게 주장하려고 합니다. 즉, 특허권자는 동일한 특허에 대해 권리행사를 할 때에는 가급적 넓은 청구범위로 주장하고, 무효 여부를 다툴 때에는 가급적 좁은 청구범위로 주장합니다. 이러한 특허권자의 모순된 청구범위 해석 주장이 금반언 원칙에 위반되는 행위인지에 대한 판례가 없어서 실무적으로 혼선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혼선을 없애주는 특허법원 판결이 있어, 이를 소개하겠습니다.
2. 사건 개요
대상 판결(2023허11593)에 의하면, 특허 보호범위와 관련하여, 원고가 동일한 특허에 관한 종전 특허무효 심판에서 한 청구범위 해석 주장과 그 내용 및 범위를 달리하는 주장을 후속 권리범위확인 심판에서 함에 따라, 피고는 원고의 주장이 기존 주장을 번복하는 것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3. 관련 법리
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및 금반언 원칙의 적용
민사소송법 제1조 제2항은 "당사자와 소송관계인은 신의에 따라 성실하게 소송을 수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소송절차에서도 신의칙이 적용됨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신의칙에서 파생된 금반언 원칙은 당사자 한쪽이 일정한 소송행위를 하고, 상대방이 이를 신뢰하여 자신의 소송상 법적 지위를 결정한 뒤, 신뢰를 제공한 당사자가 종전의 태도와 모순되는 거동을 하여 상대방의 소송상 지위가 부당하게 불리하게 될 경우, 이러한 모순된 주장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이는 절차의 안정성을 해치고 소송절차를 남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나. 소송상 주장의 변경 가능성과 신의칙 적용의 한계
그러나 민사소송의 당사자는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법적 주장을 제출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며, 증거조사 결과에 맞추어 진술이나 주장을 변경할 필요성이 생기기도 합니다. 자백의 구속력이나 실기한 공격·방어방법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변론종결 시까지 쟁점에 대한 입장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민사소송의 목표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소송상의 모순된 주장에 관하여 신의칙을 적용하는 것은 최대한 신중해야 합니다.
다. 신의칙 적용의 요건
대법원 판례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당사자의 소송상 주장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판시합니다. 상대방에게 신의를 공여하였거나, 객관적으로 보아 상대방이 신의를 가짐이 정당한 상태에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상대방의 신의에 반하여 모순된 주장을 하는 것이 정의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정도의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이러한 법리는 민사소송법을 준용하는 행정소송절차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4. 판결의 요지
특허법원은 위 법리에 기초하여, 원고가 동일한 특허에 관한 종전 무효사건에서 했던 청구범위 해석 주장과 그 내용 및 범위를 달리하는 주장을 후속 권리범위확인 사건에서 했다는 사정만으로는 금반언 원칙 또는 신의칙에 위반되는 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 신뢰 공여 및 정당한 신뢰 근거 부족
종전 무효사건에서 양 당사자는 각각 자신에게 유리한 법률적 주장을 한 것일 뿐이며, 원고가 무효사건에서 한 청구범위 해석 관련 주장이 향후 그 청구범위 해석을 넘어서는 범위에 관하여는 권리행사를 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신의를 상대방에게 부여한 것이라고 볼 만한 사정이 없습니다.
또한, 원고의 청구범위 해석 주장이 정당한 것으로 피고가 신뢰하였다거나, 원고가 청구범위 해석에 관하여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관하여 피고가 정당한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고 볼 근거도 없습니다.
나. 당사자 주장 기속력 부정
동일한 당사자가 동일한 특허권에 관하여 무효 사건과 권리범위 사건에서 청구범위 해석을 달리 주장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법원은 소송에서의 청구범위 해석에 관한 당사자의 주장에 기속되지 않습니다.
특허권자가 무효사건과 침해사건에서 청구범위 해석에 관하여 달리 주장했다는 사정만으로 신의칙에 위반되어 허용되지 않는다고 본다면, 이는 종전 소송에서의 원고 주장에 사실상 기속력을 인정하는 결과가 될 수 있어 타당하지 않습니다.
5. 대상 판결의 시사점 및 한계
가. 시사점
법원이 소송 당사자의 주장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신의칙을 남용하여 상대방의 정당한 주장을 봉쇄하려는 시도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대상판결은 단순히 이전 주장과 다른 주장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신의칙 위반으로 보지 않으며, 상대방에게 정당한 신뢰가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그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가 정의관념상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면밀히 판단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나. 한계
1) 대법원 판결이 아님
대상 판결은 피고가 특허법원 판결에 대해 상고하지 않아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아니어서, 향후 동일 또는 유사한 쟁점에 대해 대법원에서 다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존재하며, 대상 판결의 법리적 영향력이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2) 상대방의 방어권 행사 측면의 어려움
비록 대상 판결이 "정당한 신뢰" 요건을 강조했지만, 실제로 상대방이 특정 주장을 신뢰하고 이에 기반하여 방어 전략을 수립했을 때, 해당 주장의 번복으로 인해 입게 되는 실질적인 불이익을 완전히 막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대상 판결의 태도는 이러한 방어권 행사의 어려움을 간과할 여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