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양수인의 상호속용에 관한 판례 정리 - 윤정근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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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4.06.04
윤정근 변호사
1. 상호속용의 의미
상법 제42조에서는 영업을 양수도할 때 영업양수인이 양도인의 상호를 계속 사용하는 경우에 양도인의 영업으로 인한 제3자의 채권은 양수인도 변제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ABC과일가게’라는 상호를 사용하는 과일가게를 인수한 사람이 영업을 양수한 이후에 새로운 상호를 사용하지 않고 기존의 ‘ABC과일가게’라는 상호를 계속 사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가게를 인수한 사람이 기존 가게가 부담하던 일체의 채무를 인수하지 않기로 약정하였다 하더라도, 기존 가게와 동일한 상호를 사용하는 이상 기존 가게의 채권자에 대한 채무를 영업양수인도 부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실제 영업양수도 계약서상에는 ‘기존 가게의 채무를 새로운 주인이 인수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더라도, 같은 상호를 계속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가게의 주인이 변경되었다는 사실이나 기존 가게의 채무가 새로운 주인에게 인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쉽게 알려지기 어려운 사정을 고려하여, 새로운 주인에게도 기존 가게의 채무를 변제할 책임을 지우기 위하여 특별히 마련된 규정입니다(대법원 1989. 12. 26. 선고 88다카10128 판결, 대법원 1998. 4. 14. 선고 96다8826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설령 영업양수도 계약서에는 ‘기존 가게의 채무를 새로운 주인이 인수하지 않는다’라고 명확히 규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기존 가게로부터 돈을 받을 채권이 있는 사람은 기존 가게의 주인뿐만 아니라 새로운 주인에게도 자신의 채권을 행사하여 변제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2. 영업양수도 외에 영업을 현물출자하는 경우에도 적용
상법 제42조에서는 영업양수도의 경우를 규정하고 있지만, 반드시 영업양수도의 경우에만 상호속용 규정이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예로 든 과일가게처럼 소규모의 영업을 양수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규모가 큰 회사의 경우에는 여러 개의 사업부를 보유하고 있어서 그 중 어느 한 사업부를 제3자에게 매각할 수도 있고, 아예 사업부 자체를 현물출자하여 새로운 회사를 설립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ABC회사'는 내부에 '자동차제조사업부' , ‘TV제조사업부’, ‘배터리제조사업부’가 있었는데, 그 중 ‘배터리제조사업부’를 떼어내서 현물출자를 하여 ‘ABC배터리회사’라는 새로운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ABC반찬가게’라는 상호를 사용하는 개인사업자의 영업이 번창하여 새로운 투자를 받아서 주식회사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기존 영업을 현물출자하여 ‘주식회사 ABC반찬가게’라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비록 영업을 양수도한 것은 아니지만 영업을 현물출자하여 새로 설립한 회사에서 상호를 속용하는 경우에도 상호속용 규정이 유추적용될 수 있습니다(대법원 1995. 8. 22. 선고 95다12231 판결 등).
따라서 기존 가게로부터 돈을 받을 채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영업양수도가 아니어도 영업을 현물출자하여 새로 설립된 회사를 상대로도 상호속용 규정에 따라 자신의 채권을 행사하여 변제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3. 상호가 완전히 동일하지 않더라도 주요 부분이 공통되면 적용
상호속용 규정은 영업양수도 전후나 영업출자 전후의 상호가 100% 동일하지 않더라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영업양수도를 하거나 영업출자를 해서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 이후에 반드시 기존 상호와 100% 동일한 상호를 사용한 경우에만 상호속용 규정이 적용된다면 상호의 일부만 변경하여 상호속용의 책임을 얼마든지 회피할 수 있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ABC반찬가게’라는 상호 대신 ‘ABC반찬판매점’이나 ‘ABC반찬스토어’처럼 상호의 일부분을 변경하더라도 주요한 부분이 동일하면 상호속용 규정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도 기존의 ‘ABC반찬가게’로부터 돈을 받아야 하는 채권자는 ‘ABC반찬판매점’이나 ‘ABC반찬스토어’와 같은 상호를 사용하는 새로운 가게 주인에게도 자신의 채권을 행사하여 변제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요한 부분이 동일하지 않더라도 동일한 것으로 취급할 수 있을 정도로 공통되거나 유사한 경우에도 상호속용 규정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식회사 레미콘 이라는 상호를 ‘ ABC ’ 사용하다가 영업양수도 이후에 ‘ABC콘크리트 주식회사’라는 상호를 사용하는 경우에 ‘레미콘’과 ‘콘크리트’는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 의미상 동일한 것으로 취급할 수 있을 정도로 공통되거나 유사합니다.
이처럼 상호의 주요 부분이 동일하지는 않지만 동일한 것으로 취급할 수 있을 정도로 공통되거나 유사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도 상호속용 규정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대법원 1998. 4. 14. 선고 96다8826 판결 등).
4. 상호가 아니라 영업 명칭이나 영업표지를 속용하는 경우에도 적용
우리 주위에는 상호와 다른 영업 명칭이나 영업표지를 사용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예를 들면 소비자에게는 ‘번개익스프레스’라는 영업표지로 잘 알려진 택배회사의 실제 상호는 이와 전혀 무관한 ‘주식회사 ABC’인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1)
이처럼 상호는 소비자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는데 위와 같은 영업 명칭이나 영업표지가 소비자에게 널리 알려진 경우에는, 영업양수도나 영업출자 후 상호가 아니라 위와 같은 영업 명칭이나 영업표지를 계속 사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상호가 아니라고 해서 상호속용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부당하고 불합리할 것입니다. 이에 법원은 영업양도인의 영업 명칭이나 영업표지를 계속 사용하는 경우에도 상호속용 규정을 유추적용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09. 1. 15. 선고 2007다17123, 17130 판결, 2022. 4. 28. 선고 2021다305659 판결 등).
따라서 앞서 예를 든 것처럼 ‘주식회사 ABC’가 소비자들에게 ‘번개익스프레스’로 잘 알려진 택배사업부를 ‘XYZ 주식회사’에게 양도하였고, ‘XYZ 주식회사’는 자사의 상호인 ‘XYZ 주식회사’를 그대로 유지하되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번개익스프레스’라는 영업 명칭이나 영업표지를 계속 사용하여 영업을 한다면, 위와 같은 택배사업부 영업에 관하여 기존의 ‘주식회사 ABC’로부터 돈을 받을 채권이 있던 사람은 ‘XYZ 주식회사’를 상대로도 자신의 채권을 행사하여 변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5. 채권자가 영업양도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채무가 인수되지 않은 사실을 몰랐으면 적용
상호속용 규정은 영업양수도 과정에서 자신의 채권을 행사할 기회를 빼앗긴 채권자가 외관상 해당 영업이 계속되고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법취지에 비추어 보면 영업양수도 . , 당시에 자신의 채권에 대한 채무가 인수되지 않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에게는 상호속용 규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대법원 1989. 12. 26. 선고 88다카10128 판결 등).
그러나 ‘영업이 양도된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채권에 대한 채무가 인수되지 않은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면 그러한 경우에는 상호속용 규정을 적용해야 하고, ‘영업양수도 당시에 채무가 인수되지 않은 사실을 채권자가 알고 있었음’을 증명할 책임은 채무를 부담하는 영업양수인에게 있다는 것이 법원의 판례입니다(대법원 2009. 1. 15. 선고 2007다17123, 17300 판결 등).
또한 채권자가 ‘영업양수도 당시나 그 무렵’에는 자신의 채권에 대한 채무가 인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몰랐으나, 그 후 ‘몇 개월이 지난 다음’에 자신의 채권에 대한 채무가 인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우에도, 영업양수도 당시에 이미 상호속용 규정에 따라 영업양수인은 채무를 부담하게 되었고, 그 후 채권자가 채무가 인수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더라도 영업양수인의 변제책임이 소멸되는 것도 아닙니다(대법원 2022. 4. 28. 선고 2021다305659 판결 등).
따라서 단순히 ‘채권자가 영업양수도 사실을 알고 있었다’라는 사정만으로는 상호속용 규정의 적용을 배척할 수는 없고, ‘채권자가 영업양수도 당시 자신의 채권에 대한 채무가 인수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라는 사실을 영업양수인이 증명하지 못하는 이상 상호속용의 책임을 부담해야 할 것입니다.
6. 맺음말
영업양수도 후에 예전 상호를 100%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물출자를 하여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다거나, 상호의 주요 부분이 같다거나, 상호 대신 사용하는 영업표지(상표 등)가 같다거나, 아니면 상호가 같지는 않지만 주요 의미가 같거나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경우는 적지 않습니다. 또한 직원에 대한 회사의 직무발명보상금채무와 같이 영업양수도나 현물출자 과정에서 협의의 대상이 되지 못하거나 쉽게 간과될 수 있는 채권채무관계도 적지 않습니다. 이처럼 ‘채권자가 자신의 채권을 행사하려고 보니 채무자가 변경되어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된 경우’에는 상호속용의 법리가 적용될 수 있는지 검토해 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1) 실제 예를 몇 개 들자면, 유명 온라인 쇼핑몰인 ‘옥션’은 영업표지가 ‘옥션’일 뿐이고 상호는 ‘주식회사 지마켓’입니다. 또한 유명 가격비교 사이트인 ‘다나와’도 영업표지가 ‘다나와’일 뿐이고 상호는 ‘주식회사 커넥트웨이브’입니다. 유명 놀이동산인 ‘에버랜드’도 영업표지가 ‘에버랜드’일 뿐이고 상호는 ‘삼성물산 주식회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