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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포기에 관한 대법원 2023. 3. 23.자 2020그42 전원합의체 결정

    조회수
    331
    작성일
    2023.07.19
1. 들어가며

올해 3. 23.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피상속인의 자녀들이 모두 상속포기를 하면 피상속인의 배우자가 있는 경우 그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된다는 내용의 결정이다. 이와 관련하여 기존 대법원의 입장이 어땠는지, 대법원이 입장을 변경한 이유는 무엇인지를 간단히 소개한다.

2.종래 대법원의 입장 - 대법원 2015. 5. 14. 선고 2013다48852 판결

가. 종래 대법원은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에는 배우자와 피상속인의 손자녀 또는 직계존속이 공동으로 상속인이 되고, 피상속인의 손자녀와 직계존속이 존재하지 아니하면 배우자가 단독으로 상속인이 된다”고 판단하였다.

위 판결을 이해하기 위해서 민법의 몇 가지 규정을 알아야 한다.

제1000조(상속의 순위) ①상속에 있어서는 다음 순위로 상속인이 된다.
1.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2. 피상속인의 직계존속
3. 피상속인의 형제자매
4. 피상속인의 4촌 이내의 방계혈족
②전항의 경우에 동순위의 상속인이 수인인 때에는 최근친을 선순위로 하고 동친등의 상속인이 수인인 때에는 공동상속인이 된다.
③ (생략)

제1003조(배우자의 상속순위) ①피상속인의 배우자는 제1000조 제1항
제1호와 제2호의 규정에 의한 상속인이 있는 경우에는 그 상속인과 동순위로 공동상속인이 되고 그 상속인이 없는 때에는 단독상속인이 된다.
② (생략)

제1042조(포기의 소급효) 상속의 포기는 상속개시된 때에 소급하여 그 효력이 있다.


나. 민법 제1000조

일단 제1000조 제1항 및 제2항에 따르면, 먼저 피상속인의 자녀들이 상속인이 되고, 자녀들이 없다면 손자녀들이, 손자녀들이 없다면 증손자녀들이 상속인이 된다.

만약 피상속인에게 직계비속이 없다면 피상속인의 부모, 부모가 없다면 조부모가, 조부모도 없다면 증조부모가 상속인이 된다.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직계존속이 모두 사망하거나 없는 경우에는 피상속인의 형제자매가 상속인이 되는 것이다.

다. 민법 제1003조

이후 보아야 할 것은 제1003조의 규정이다. 피상속인의 배우자는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또는 직계존속인 상속인이 있는 경우에는 그들과 동순위의 공동상속인이 된다. 그러나 피상속인에게 직계비속 및 직계존속인 상속인이 없는 경우(즉, 결혼을 하였으나 자녀가 없고, 부모, 조부모가 모두 사망한 경우)에는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된다.

라. 민법 제1042조

그 다음으로 보아야 할 것이 제1042조의 규정이다. 상속의 포기는 상속개시된 때(=피상속인이 사망한 때)에 소급하여 그 효력이 있다. 즉, 상속포기를 한 상속인은 ‘앞으로 상속인이 아니다’라는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겠다’라는 의미이다.

마. 정리

이를 종합하여 다시 종래 대법원의 입장을 살펴보자.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가 전부 상속을 포기한 경우’라고 하였으므로, 피상속인에게는 배우자와 자녀가 있다. 즉, 민법 제1000조 제1항 제1호 및 제2항에 따라 자녀들이 상속인이 되고, 제1003조 제1항에 따라 배우자가 자녀들과 공동상속인이 된다.

그런데 자녀가 전부 상속을 포기한다. 그렇다면 제1042조에 따라 자녀들은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다. (case 1)피상속인에게 손자녀가 있다면 제1000조 제1항 제1호 및 제2항에 따라서 손자녀가 상속인이 되고, (case 2)손자녀가 없는데 부모가 있다면 제1000조 제1항 제2호에 따라서 부모가 상속인이 된다. 만약 (case 3)손자녀와 부모가 없다면 제1000조 제3항에 따라서 형제자매가 상속인이 된다.

이처럼 제1000조를 적용한 뒤에 제1003조를 적용하면 case 1의 경우 상속인이 제1000조 제1항 제1호에 규정한 상속인(손자녀, 직계비속)이므로, 배우자는 그 상속인(손자녀)과 동순위로 공동상속인이 된다. case 2의 경우 최선순위 상속인이 제1000조 제1항 제2호에 규정한 상속인(부모, 직계존속)이므로, 배우자는 그 상속인(부모)과 동순위로 공동상속인이 된다. case 3의
경우 제1000조 제1항 제1호 및 제2호의 규정에 의한 상속인(직계존속 또는 직계비속)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제1003조에 따라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되고 제1000조 제1항 제3호에 의해 상속인인 줄 알았던 형제자매는 상속인이 아니게 된다.

즉,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에는(case 1)배우자와 피상속인의 손자녀 또는 (case 2)(배우자와) 직계존속이 공동으로 상속인이 되고, (case 3)피상속인의 손자녀와 직계존속이 존재하지 아니하면 배우자가 단독으로 상속인이 된다”

3. 변경된 최근 판례 – 대법원 2023. 3. 23.자 2020그42 전원합의체 결정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최근 대법원은 피상속인의 자녀들이 모두 상속포기를 하면 피상속인의 배우자가 있는 경우 그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된다는 내용의 결정을 하였다. 즉, 종래 판례에서 case 1 내지 3의 경우에 차이를 두지 않고 모두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된다는 것이다. 민법 제1000조,제1003조, 제1042조 규정을 준수한 종래의 입장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어보이는데, 대법원은 왜 그 입장을 변경하였을까?

일단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살펴본다. 이 사건에서 피상속인이 사망할 당시 피상속인에게는 배우자와 자녀, 손자녀가 있었다. 그런데 피상속인에게 적극재산보다 소극재산(채무)이 많았다. 그래서 상속인들이었던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들은 공동상속인 중 1명이 한정승인을 하고 나머지 공동상속인이 상속포기를 해서, 한정승인을 한 1명이 상속채무를 정리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자녀들이 모두 상속포기를 하고 배우자가 한정승인을 하였다.

가. 종래 판례의 입장을 따를 경우

이 사건은 종전 판례의 case 1에 해당하는 경우이다. 따라서 자녀들의 상속포기로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손자녀가 공동상속인이 되었는데 배우자만 한정승인을 한 것이다.

따라서 피상속인의 채권자는 상속재산 중 적극재산을 초과하는 범위의 채권에 관하여 한정승인을 한 피상속인의 배우자에게는 그 채권의 변제를 요구할 수 없으나, 한정승인을 하지 않은 피상속인의 손자녀에게는 채권의 변제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피상속인의 공동상속인이었던 배우자와 자녀들이 의도한 것과는 다르다는 문제점이 있다.

나. 최근 대법원의 입장 변경

대법원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녀들이 모두 상속포기를 하는 경우 종래 판례가 손자녀들과 배우자가 공동상속인이 된다는 것을 변경하여,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된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크게 아래와 같다.

1) 민법 규정의 쳬계적·논리적 해석과 우리 민법의 연혁

예컨대,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두 자녀(A, B)가 공동상속인이 되는 경우를 본다. 배우자와 자녀 A가 상속포기를 하는 경우 자녀 B가 단독상속인이된다. 배우자와 자녀 B가 상속포기를 하는 경우에도 자녀 A가 단독상속인이 된다. 그런데 종래 판례에 따르면 자녀 A와 자녀 B가 상속포기를 하는 경우에는 손자녀가 있는지, 손자녀가 없다면 직계존속은 있는지를 따진 뒤에 둘다 없어야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된다.

대법원은 배우자와 두 자녀 A, B 모두 ‘공동상속인’이라는 동일한 지위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종래 판례대로라면 혈족상속과 배우자상속을 구분하는 것이 되어 우리 민법의 해석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판례 변경의 이유로 들었다.

제1043조(포기한 상속재산의 귀속) 상속인이 수인인 경우에 어느 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한 때에는 그 상속분은 다른 상속인의 상속분의 비율로 그 상속인에게 귀속된다.

민법 제1043조는 상속인이 수인인 경우 공동상속인의 일부가 상속포기를 하면 상속분이 다른 상속인들에게 귀속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종래 판례는 제1043조의 ‘수인의 상속인’을 해석하는데 있어, 혈족상속과 배우자상속을 구분하는 것이 되어 우리 민법의 해석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였다.

나아가 우리나라의 민법이 제정되기 이전의 관습, 민법이 제정되고 이후 개정되면서 변화한 상속에 관한 규정들을 보더라도 당시 시대상에 따라서 상속순위나 상속분에 관한 구체적 내용에는 차이가 있지만 배우자상속과 혈족상속을 특별이 구분하지 않았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따라서 혈족상속과 배우자상속을 평등하게 생각하여 - 즉, 공동상속인을 ‘배우자, A, B’ 라고 볼 것이 아니고, 그냥 A, B, C라고 생각하고, 이 중 2인이 상속포기를 하면 나머지 1인이 단독상속인이 된다고 해석하면 충분하다.

2) 상속인들의 의사 및 목적

특히 피상속인의 상속재산 중 적극재산보다 소극재산이 많은 경우, 공동상속인 중 1인이 한정승인을 하고 나머지 공동상속인이 상속포기를 하는 것은 1인이 피상속인의 채무를 상속하고, 나머지 공동상속인은 이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종래 판례에 따르면 한정승인을 한 1인의 공동상속인이 자녀가 아니라 배우자인 경우에는, 손자녀 또는 직계비속이 다시 채무를 상속하게 되므로 공동상속인의 의사에 반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3) 실무상 문제

종래 판례에 따르는 경우 배우자가 단독으로 한정승인을 하여 상속된 채무를 모두 해결하기 위해서 피상속인의 자녀들, 손자녀들, 직계비속들 모두가 차례로 상속포기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사건처럼 손자녀들이 상속포기를 하지 않아 피상속인의 채권자가 피상속인의 손자녀를 상대로 채무변제를 요구하는 경우, 종래 판례에 따르더라도 손자녀는 민법 제1019조 제1항에 따라서 나중에라도 상속포기를 할 수도 있지만 불필요한 절차와 비용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불필요한 절차를 거치고 비용을 들여가며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되느니, 자녀들의 상속포기만으로 배우자를 단독상속인으로 보면 간명하게 법률관계를 확정할 수 있다.

4. 마치며

몇 년 전 동료 변호사로부터 이 사건과 유사한 사건을 맡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수년 전 의뢰인의 아버지가 사망하였는데 의뢰인과 형제들이 상속포기를 하고 어머니가 한정승인을 하였는데, 최근 아버지의 채권자가 의뢰인의 자녀들과 조카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왔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 사건은 최근의 판례 변경 이전에 잘 마무리 되었다고 한다.

상속은 누구나 한번은 겪게 되는 일이다. 매년 수천 건의 상속포기와 한정승인 신고가 이루어지고 그와 관련된 문제들도 꽤나 자주 발생한다. 변경된 판례를 보며 과거 동료 변호사와의 대화가 떠올라 이 글을 작성하였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