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권 권리소진과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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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19.08.22
(대법원2019.1.31. 선고 2017다289903 판결)
Ⅰ. 권리소진의 원칙
‘권리소진의 원칙(exhaustion doctrine)’이란, 지식재산권자의 승인을받아 그 지식재산권을 구현한 제품(이하 ‘지식재산물품’)이 판매 등의 방식으로 거래에 제공된 경우 지식재산권이 소진되어, 이후에위 제품을 사용하거나, 재판매하는 등의 행위는 지식재산권의 침해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말합니다. 권리소진의 원칙은 미국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인 ‘최초판매의 원칙(first-sale doctrine)’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식재산권 관련 법률상 명문 규정이 존재하는지여부를 불문하고 이러한 원칙이 인정되는 근거는, 지식재산권자가 지식재산물품을 적법하게 판매함으로써, 정당한 보상을 얻은 이상 그 이후의 전전유통 단계에까지 지식재산권의 통제를 받도록 하는 것은 지식재산물품의자유로운 유통을 방해하고 거래 안전 및 소비자의 이익을 현저하게 저해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러한 권리소진의 원칙을 계약에 의하여 제한할수 있는지, 속지주의에 기반한 특허법의 성격상 진정상품병행수입과 같은 해외 판매의 경우에 어떻게 적용될수 있는지 전세계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어 왔는데, 이와 관련하여 미국 연방대법원 및 한국대법원의 판례를소개해드리겠습니다.
Ⅱ. 미국 연방대법원의 Lexmark 판결
미국 연방대법원은 2017년 5월 30일에최초 판매 원칙(권리소진의 이론)에 관한 기존 입장을 정리하는새로운 판결(이하 ‘Lexmark 판결’)을 내놓았습니다(Impression Products, Inc. v.Lexmark International, Inc.).
Lexmark판결 이전에는미국 연방항소법원(CAFC)의 판례에 따라 특허권자가 해당 특허를 구현한 물품을 판매할 때 해당 물품의재판매나 이용에 관하여 제한을 가하는 것이 비교적 폭넓게 인정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제한에 위반할경우, 특허권자는 해당 물품의 구매자나 그로부터 다시 물품을 구매한 구매자에게 특허 침해를 주장하는것이 가능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사안에서 연방항소법원은기존의 입장에 따라 특허권자가 재사용 등의 합법적 제한 사항을 부가한 경우 이를 강제할 수 있다고 하면서, 해외에서제품을 판매한 경우에도 여전히 특허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 연방대법원은 연방항소법원의 판결을뒤집었는데, 이 사건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특허권자가 스스로또는 실시권자를 통하여 특허 물품을 판매하면 해당 물품의 실시에 관하여 어떤 제약을 가하였는지와 상관없이 특허권은 소진된다'고 하였습니다. 연방대법원은 특허권 소진이 "특허권의 본질”에 따른 것이며, "소유권 이전제한을 금지하는 보통법 상의 원칙이 특허권보다 우선하는 지점"이라고 판시하였습니다. 추가적으로 미국 연방대법원은 특허 소진이 "획일적이고 자동적(uniform and automatic)”인 것이라고까지 표현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미국 연방대법원은 '특허 소진은 특허권자가 스스로 일정한 대가를 받고 특허 물품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함으로써 일어나는 것이지, 특허권자가 얼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기대와는 무관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 연방대법원은 미국 정부가 제시하였던 '특허권자가 명시적으로 유보하지 않는 한 외국에서의 판매도 특허를 소진시킨다'는 절충적인 해석도 옳지 않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Lexmark 판결은 지식재산권에서 권리소진이 당연히 인정됨과 동시에 지식재산물품이 정당하게 양도된 이후에는 지식재산권자가 민사상 청구를 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지식재산권 침해를 근거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Ⅲ. 대법원 2019.1.31. 선고 2017다289903 판결
1. 사건의 경과
이 사건에서 甲(원고)는 ‘마찰이동 용접방법’이라는 방법발명(A)의 특허권자이고, 甲은 乙(보조참가인)에게 A 발명을 실시하는데 적합한 장비 (마찰교반 용접기)를 제조·판매해도 좋다는 실시허락을 하였고, 그 뒤 丙(피고)은 乙로부터 乙이 제조한 마찰교반 용접기를 구매하여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A의 특허권자인 甲은 丙을 상대로 자신의 방법발명(A)에 대한 특허침해 소송(손해배상청구)을 제기하였습니다.
2.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상고이유에서 권리소진이론이 방법 발명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됨을 인정하면서, 그 근거로서, 1) 적법하게 양도된 물건에 대해서도 실시할때마다 특허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유통 및 거래안전을 저해하며 2)특허권자를 방법발명의 실시에만 사용되는 물건의 양도가액 또는 실시권자에 대한 실시료를 결정할 수 있어 특허발명의 실시 대가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도 이미 주어져 있기 때문에 방법발명을 특허권의 소진대상에서 제외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3. 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특허권 소진의 인정근거, 성립요건 및 범위 등을 정면으로 판단한 최초의 대법원 판례로서 그 의의가 있습니다. 다만, 대상판결에서 권리소진의 주장주체를 “양수인이나 전득자”라고 전제하여 권리소진의 근거를 소유권에 기반한 것으로 보아 이 경우 양도 외 대여 형태의 실시를 제외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대상판결에서 설시하는 방법발명에서 권리소진의 대상이 되는 물건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소 모호하다는 점에서 비판의 시각이 있습니다.
Ⅳ. 마치며
미국 연방대법원판결 및 한국 대법원 판결 모두 지식재산물품에 대한 권리소진의 이론을 인정하고 있으며, 실시권자에 의해 적법하게 양도된 물건도 마찬가지로 권리소진의 이론이 적용되어 특허권의 침해를 구성하지 않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후 지식재산물품의 사용/유통 등을 통제하고자 하는 지식재산권자는 지식재산물품을 판매하는 대신 그 사용에 대한 라이선스만을 제공하거나, 라이선스를 제공함에 있어서도 제조/판매에 관한 권한을 허여하지 않는 방식을 취하는 등의 새로운 지식재산권 라이선스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