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출원을 하기 전에 발명이 공지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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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18.04.23
1. 들어가며
해외시장에서 지식재산권 확보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화되면서 해외 특허출원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습니다. 해외 특허출원을 하는 방식으로는, 먼저 국내출원을 한 후 그에 대한 우선권을 주장하여 개별 국가로 직접 출원하거나 PCT 출원을 거쳐서 개별 국가로 진입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런데, 국내출원을 하기 전에 출원인 또는 발명자가 특허품을 판매하거나 특허 기술을 인터넷에 홍보하거나 논문을 발표하는 등의 사유로 해당 발명이 공지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자 스스로의 의사에 의하여 특허 발명이 출원전 공지된 경우(이하에서는 이를 “본인 공지”라 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특허법상으로는 공지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출원을 하고 소정의 조치만 취하면 심사과정에서 그로 인한 불이익을 받지 않습니다. 실무상 이를 “공지예외”라고 합니다(특허법 제30조).
특허 전문가는 아니지만 출원의 경험이 있는 분들 중에는, 위와 같이 “본인 공지”로부터 1년 간은 “공지예외”가 적용되므로 출원 전에 발명을 공개해도 문제 없다고 알고 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 발명을 중국이나 유럽 등에 출원하려고 할 때에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한국 이외의 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공지예외”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나, 이하에서는 설명의 편의상 그와 유사한 외국의 제도를 지칭할 때 이 용어로 통일하겠습니다).
2. 해외출원을 할 때 “공지예외”를 함부로 기대해서는 안되는 이유
(1) “공지예외”는 “우선권”과 별개의 문제입니다.
한국에 특허출원을 하고, 그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외국(전세계 대부분의 국가)에 특허출원을 할 때에는 “우선권”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우선권”이라는 것은 해당 외국에서 특허출원을 심사할 때 그 기준이 되는 시점만 한국출원일로 앞당겨 줄 뿐입니다. 해당 외국에서 “공지예외”를 인정해 줄 것인지 여부는 “우선권”과는 별개로 보아야 합니다.
만일 (i) 한국출원을 한 다음에 (ii) 출원인이나 발명자가 발명을 공지시켰고, 그 후 (iii) 한국출원일로부터 1년 이내에 우선권을 주장하면서 외국에 출원을 한 경우라면 “공지예외”를 거론할 필요 자체가 없습니다. 공지예외는 “출원전”의 공지를 구제해 주려는 제도인데, 위의 공지는 “출원후”의 공지이므로 애초부터 그로 인한 신규성 상실 등의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공지예외”라는 제도가 문제되는 것은 위와 같은 경우가 아니라, (i) 출원인이나 발명자가 발명을 공지시킨 후 (ii) 그로부터 1년 이내에 공지예외를 주장하면서 한국출원을 하였고, (iii) 한국출원일로부터 다시 1년 이내에 우선권을 주장하면서 외국에 출원을 한 경우입니다. 이와 같은 경우 해당 외국에서 (i)의 공지가 구제 가능한지(즉, “공지예외”가 인정될 것인지) 여부는 그 나라의 관련 규정에 달려 있습니다. 문제는 관련 규정이 나라마다 크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2) 공지예외를 인정해 주는 사유는 나라마다 다릅니다.
“본인 공지” 중에서 어떤 것을 공지예외의 대상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규정이 제각각입니다. 한국과 같이 본인 공지의 유형을 불문하는 국가도 있으나, 그렇지 않고 특정한 유형의 행위(예를 들어 발명자가 해당 발명을 소정의 박람회에 출품한 것, 또는 발명자가 소정의 학술단체에서 발표한 것)만으로 그 대상을 한정하는 국가도 있습니다.
전자의 예로는 미국, 일본, 캐나다 등을 들 수 있고, 후자의 예로는 유럽(EP), 중국, 인도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유럽(EP)의 경우 소정의 요건을 갖춘 박람회 출품에 대해서만 공지예외를 인정해 주고, 중국 및 인도의 경우 소정의 요건을 갖춘 박람회 출품 또는 학술 발표에 대해서만 공지예외를 인정해 줍니다(그 “소정의 요건”도 나라마다 다릅니다). 실무상 문제되는 본인 공지의 사례들 중에서 중국이나 유럽(EP)의 공지예외 기준에 부합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중국, 유럽(EP) 등에서 인정하는 상기의 행위 유형에 해당하지 않는 다른 모든 유형의 공지행위, 예를 들어 특허품을 판매하거나 특허 발명에 관한 팜플렛을 배포하거나 특허 발명을 인터넷에 홍보하는 등의 행위를 특허출원 전에 한 경우, 그 행위를 한 바로 그 순간 적어도 중국, 유럽(EP) 등에서는 특허권의 취득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예컨대 출원전의 판매 사실을 감추고 중국에 출원하여 그 사실을 모르는 중국 특허청으로부터 특허를 받는 경우도 존재할 수는 있겠으나, 이런 식으로 특허를 받았다 해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아는 누군가가 증거를 입수하여 무효심판을 청구하면 그 특허는 언제든지 무효로 될 수 있는 불안한 상태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3) 공지예외를 인정해 주는 기간은 나라마다 다릅니다.
한국과 같이 공지일로부터 1년 내에 출원하면 기간을 준수한 것으로 보는 국가도 있으나, 공지일로부터 6개월 내에 출원해야 하는 국가도 있습니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는 일본입니다. 일본은 이 기간을 1년으로 연장하기 위한 특허법 개정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만, 아직은 여전히 6개월입니다.
일본 특허법상 “공지일로부터 6개월”이라는 기간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공지일로부터 6개월 내에 일본에 출원하여야 합니다. 공지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한국출원을 한 다음 이를 기초로 우선권을 주장하면서 일본에 출원한다 하더라도, 일본에 출원한 날이 공지일로부터 6개월 경과 후라면 이 기간은 준수되지 않은 것이며 따라서 일본에서 공지예외를 적용받지 못합니다. 공지예외를 적용받으려면 법정 기간 내에 해당 국가에 출원해야 한다는 원칙은 일본뿐 아니라 (미국 이외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통입니다.
PCT 출원을 거쳐서 일본에 진입하는 경우라면, 출원기간의 준수 여부는 “PCT 출원일”을 기준으로 따집니다(이는 일본뿐 아니라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i) 본인 공지 → (ii) 공지예외를 주장한 한국출원 → (iii) 한국출원에 대한 우선권을 주장한 PCT 출원 → (iv) PCT 출원에 기초한 일본 진입의 순서대로 진행된 경우, (iii)의 “PCT 출원일”이 공지일로부터 6개월 이내라면 위 기간은 준수된 것이고 6개월 경과 후라면 위 기간은 준수되지 못한 것입니다.
미국은 공지예외(미국에는 “공지예외” 대신에 “Grace period”라는 제도가 있습니다만, 설명의 편의상 “공지예외”라는 용어를 그냥 사용하겠습니다)의 기간과 관련하여 현행법상 특이한 규정을 갖고 있어서 출원인에게 매우 유리합니다. 구체적으로, 미국에서는 “공지일로부터 1년” 내에 출원하면 공지예외를 인정해 주며, 미국 이외의 나라에 먼저 출원한 다음(이를 “선출원”이라 하겠습니다) 그에 대한 우선권을 주장하여 미국출원을 하는 경우 위 기간의 준수 여부는 “선출원의 출원일”을 기준으로 따집니다. 선출원 후 PCT 출원을 거쳐서 미국에 진입하는 경우에도 “선출원의 출원일”을 기준으로 따집니다.
예를 들어, (i) 본인 공지 → (ii) 공지예외를 주장한 한국출원 → (iii) 한국출원에 대한 우선권을 주장한 미국 출원의 순서대로 진행된 경우, (ii)의 “한국출원일”이 공지일로부터 1년 이내라면 위 기간은 준수된 것이고 1년 경과 후라면 위 기간은 준수되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i) 본인 공지 → (ii) 공지예외를 주장한 한국출원 → (iii) 한국출원에 대한 우선권을 주장한 PCT 출원 → (iv) PCT 출원에 기초한 미국 진입의 순서대로 진행된 경우, (ii)의 “한국출원일”이 공지일로부터 1년 이내라면 위 기간은 준수된 것이고 1년 경과 후라면 위 기간은 준수되지 못한 것입니다. 과거의 미국법은 이와 달랐습니다만, 현행법상으로는 그러합니다.
3. 마치며
국내에는 특허 출원을 하여 특허까지 받았으나 외국에는 특허 출원을 하지 않은 경우, 그 나라에 대해서는 해당 발명을 무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기부”해 준 것과 다를 바 없게 됩니다. 즉, 그 발명은 해당 외국에서 누구나(한국 국민도 포함됩니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특허 명세서도 인터넷에 공개되므로 전세계의 누구라도 이를 통하여 발명 내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시키면 되고, 도면의 경우 번역조차 필요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일 특정한 외국에 대한 발명의 “기부”가 그 나라의 공지예외 규정에 대한 무지 때문에 발생한 “사고”라면, 이는 출원인에게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아직 공지되지 않은 어떤 발명에 대하여 국내출원뿐 아니라 해외출원의 가능성까지 고려하고 계시다면, “출원전에 본인 공지를 하더라도 1년 간은 문제 없다”는 막연한 상식을 버리시는 것이 좋습니다.
끝으로, 앞에서 설명드린 복잡한 논의를 따라가기 귀찮으신 분들께는 가장 간단한 해법이 있습니다: 본인 공지를 하기 전에 특허출원부터 먼저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