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비밀 침해사건에서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의 적용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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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17.12.19
1.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의 성립요건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1)은 그 성립요건이나 성격이 전혀 다른 두 가지의 행위를 함께 정의·규율하고 있습니다. 즉 “부정경쟁행위”와 “영업비밀 침해행위”입니다. 통상 영업비밀 침해사건에서 영업비밀을 침해당한 영업비밀 보유자가 가장 우선적으로 주장하는 법조항은 부정경쟁방지법 제10조(영업비밀 침해행위에 대한 금지청구권 등) 및 제11조(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입니다. 원고가 위와 같은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침해당한 영업비밀이 위 법 제2조 제2호에 규정한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는 점, 즉 비공지성, 경제적 유용성, 비밀관리성이라는 영업비밀의 성립요건들을 모두 충족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주장·입증을 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영업비밀은 본질적으로 그것이 “비밀”로서 관리된다는 특성으로 인하여, 영업비밀이 침해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입증도 어렵지만, 그것이 영업비밀의 성립요건들을 모두 충족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입증도 역시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위 세 가지 성립요건들 중 실무상 가장 많은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비밀관리성” 요건으로서, 상대적으로 평소에 영업비밀의 관리에 소홀하기 쉬운 중소기업의 경우 특히 비밀관리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업비밀 침해가 아니라는 판결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사실상 매우 중요한 정보를 침해당하고도 위 법에 따른 비밀관리성을 충족시키지 못하여 영업비밀이 아니라는 이유로 금지청구나 손해배상청구가 모두 기각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입니다. 실무적으로 발생하는 이러한 중소기업들의 애로사항을 고려하여, 최근에는 부정경쟁방지법상 종래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이라는 영업비밀의 성립요건이, “합리적인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으로 개정됨으로써2)비밀유지성의 판단기준이 조금 완화되었습니다.
2.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의 부정경쟁행위
한편 부정경쟁방지법에서는 종래 제2조 제1호 가목 내지 자목에서, 상품주체 혼동행위, 영업주체 혼동행위, 저명표시 식별력 손상행위, 원산지 거짓표시행위 등 개별적인 구체적 행위들만을 나열하여 이를 부정경쟁행위로 정의하고, 이를 부정경쟁행위로 규율하였습니다. 그런데 위와 같은 한정적 열거주의 방식은 사회의 변화 등에 따라 나타나는 새롭고 다양한 유형의 부정경쟁행위를 적절히 규제하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2013년에 “차목”을 신설하여 “그 밖에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의 한 유형으로 새롭게 규정함으로써, 이제는 가목 내지 자목에서 정한 개별적, 구체적인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행위라도 일반적인 유형으로서 차목에 해당하는 행위에 대하여도 부정경쟁행위로 규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위 차목은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 등에 반하는 방법으로 무단 사용하는 경우를 부정경쟁행위의 한 유형으로 보고 있어, 상당히 포괄적으로 규정된 일반조항에 해당하기 때문에 개별적인 지식재산권법 즉, 특허권, 실용신안권, 디자인권 등도 문언적으로만 보면 위 규정에 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따라서 만일 문언 그대로 단지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에 해당하기만 하면 모두 차목의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면, “영업비밀”을 포함하여 우리가 “지식재산권”이라고 일컫는 대부분의 권리들 역시 모두 위 규정에 따른 부정경쟁행위에도 해당하여 이중으로 규율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최근 법원은,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성과 등이, 시장의 경쟁과 거래질서를 규율하는 전체 법체계에 의할 때 공공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취급되어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법적 보호를 하여서는 아니 되는 성질의 것인지, 아니면 위와 같은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 신설 전의 지식재산권 관련 법률들의 체계 등에서 각각의 특유한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여 그러한 법률들에 규정된 권리 등에 의해서는 보호받을 수 없었지만 이는 단지 법적 보호의 공백으로서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한 민법 제 750조 의 불법행위 규정 등을 해석ㆍ적용해 보면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으로서 법적 보호가 주어져야 하는 성질의 것인지를 규명하여,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이 정한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한바 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16. 1. 28. 선고 2015나2012671 판결).
현재 위 차목의 적용범위에 대한 더 이상의 구체적인 판례는 나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향후로도 일반규정으로의 도피가 되지 않도록 차목의 적용범위에 대한 개별 판례의 축적을 통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확립되어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3. 영업비밀 침해사건에서 부정경쟁방지법 차목 적용 관련 판례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는 영업비밀 침해사건에서도 영업비밀의 침해 이외에 보충적으로 위 차목의 부정경쟁행위에도 해당함을 주장하면서 금지 및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건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많은 사건에서는 “영업비밀”에도 해당되지 않고 차목상의 “성과”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여 모두 기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영업비밀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차목의 부정경쟁행위에는 해당된다고 하거나,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차목의 부정경쟁행위로 규율할 수도 없다는 다소 상반된 것으로 보이는 판결들도 존재합니다.
즉 전자의 사안으로서, 원고 회사 재직 중 취득한 기술정보로서의 각종 변압기 및 리액터 등의 제작사양서, 설계사양서와 도면 등을 퇴사후 설립한 회사에서 무단으로 사용한 사안에서, “비밀관리성”이 인정되지 않아 영업비밀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하면서, 예비적으로 청구한 부정경쟁행위 관련 주장에 대하여는 이 사건 정보는 영업비밀에는 해당하지 않을지라도, 적어도 원고의 영업상 주요한 자산으로서 원고의 상당한 투자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물로 볼 수 있으므로 부정경쟁방지법 제1조 제1호 차목의 부정경쟁행위에는 해당한다고 판시하고 그에 따른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를 인정한 판결이 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12. 23. 선고 2014가합514641 판결).
한편 후자의 경우, 국소지혈용드레싱 관련 시험결과보고서 등을 부정한 수단으로 취득하여 사용한 사건에서 법원은, 위 시험결과보고서 등은 비공지성이나 경제적 유용성 등을 인정할 수 없어 영업비밀로 볼 수 없다고 하였고, 영업비밀에 해당하기 위한 요건을 구비하지 못한 결과로 영업비밀 침해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상, 부정경쟁방지법 제1조 제1호 차목의 부정경쟁행위가 인정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부산지방법원 2016. 12. 7. 선고 2016가합40807 판결).
4. 영업비밀 침해사건에서 부정경쟁방지법 차목 적용의 문제점
위와 같이 일응 상반된 것으로 보이는 지방법원 판결들이 유사한 시기에 선고된 것입니다. 통상 입증이 상당히 까다롭고 권리자가 승소하기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영업비밀 침해사건에서, 해당 영업비밀이 일부 영업비밀의 성립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과연 보충적으로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의 부정경쟁행위로는 인정을 할 수 있을 것인지는 실무상 상당히 중요한 사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특히 비밀관리성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여 많은 영업비밀 침해사건들이 기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위 전자의 판결과 같이 비록 비밀관리성은 인정되지 않아 영업비밀로 볼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이를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에서 규정한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으로 볼 수 있다면부정경쟁행위로서 그 침해행위의 금지와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향후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하는 보다 많은 사건들에서 보충적으로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의 부정경쟁행위를 주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영업비밀 침해사건에 있어서 보충적으로 부정경쟁행위를 인정하는 것은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영업비밀 침해행위과 부정경쟁행위에 있어서는, 권리자가 받을 수 있는 법적 규제나 효과가 서로 상이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침해금지기간을 제한하는지 여부에 있습니다. 우리 대법원은 부정경쟁행위와는 달리, 영업비밀 침해행위의 금지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의 보장 및 인적 신뢰관계의 보호 등의 목적을 달성함에 필요한 시간적 범위 내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보므로(대법원 1998. 2. 13. 선고 97다24528 판결 등), 법원은 개별적인 사안에 따라 침해금지기간을 구체적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예를 들어, 침해행위를 한 퇴직자의 퇴사일로부터 3년). 따라서 위에서 본 전자의 판결과 같이, 영업비밀의 일부 성립요건을 결여하였다는 이유로 영업비밀 침해행위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이를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금지 및 손해배상을 인정하게 되면, 이는 오히려 모든 영업비밀의 성립요건들을 구비하여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받은 사건에서보다 영업비밀의 일부 성립요건을 구비하지 못한 사건의 원고를 보다 두텁게 보호하는 결과가 되어 매우 부당한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5. 결어
이렇게 된다면 어느 누구나, 보다 쉬운 입증만으로 침해자에게 보다 강력한 법적 규제를 줄 수 있는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의 부정경쟁행위를 주장하지, 어느 누구도 엄격한 성립요건에 대한 입증을 거쳐 침해금지가 일정한 시간적 범위 내로 제한되는 영업비밀 침해를 주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결국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침해 관련 규정들은 실제 사안에 있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규정으로 사문화되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영업비밀 침해사건에서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을 적용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할 것이며, 구체적으로 어떠한 경우에 영업비밀 침해사건에서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법원의 합리적인 판단기준이 속히 확립되어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1) 이하에서는 “부정경쟁방지법”이라고 합니다.
2) 2015. 1. 28. 개정 법률 제 13081호